김해에서 조용히 살고 계신 어르신들께, 오늘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있었던 한국인의 감동 실화 하나 전해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나라는 작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한국인의 손과 땀으로 세계를 바꾸고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콩고 외딴 시골 마을에 나타난 낯선 한국인
몇 년 전, 아프리카 콩고의 한 외진 마을에 낡은 가방 하나를 든 동양인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트랙터도, 드론도, 화려한 시설도 없었고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백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고… 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 사람은 묵묵히, 맨손으로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도, 해가 쨍쨍해도 매일 같은 시간에 땅을 일구고, 흙을 살폈습니다.
그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돈도, 식량도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같이 일하자”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따라 나왔고, 청년들이 호기심으로 삽을 들었고, 그 밭에는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형님(Kaka)’**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콩고의 언어로 존경과 따뜻함을 담은 호칭입니다.
그 ‘형님’은 사실, 한국 정부가 파견한 농업 기술 전문가였습니다. 미국 UC데이비스에서 농업생명공학 박사를 받고, 한국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다가 은퇴 후 KOICA를 통해 아프리카에 자원한 분이었죠.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스스로를 대단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수도도 없던 마을에서 컸어요. 흙 만지는 법만 오래 배운 사람일 뿐입니다.”
형님이 일군 밭에서 자란 작물은 마을 식량 자립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중국 기업의 저임금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는 힘이 됐습니다.
**그 마을은 지금 콩고 정부의 ‘농업 자립 시범지구’**가 되었고, UN FAO와 한국 외교부, KOICA까지 이 변화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땅을 바꾼 건, 돈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한국인 형님은 우리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쳐줬습니다.”
우리는 종종 한국의 위대함을 ‘기술력’이나 ‘문화 수출’에서 찾지만, 진짜 한국의 위상은 사람 속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조용히, 묵묵히, 정말 어려운 현장에서 한국인의 이름도 없이, 태극기 한 장만으로 싸우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가슴에 닿으셨다면, 주변 어르신들께도 전해주세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도, 누군가는 한국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묵묵히 싸우고 있다는 것을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